학부시절의 나에게 캐드의 첫인상은 그리 강렬하지 않았다.
아.. 컴퓨터를 이용해서 건축도면을 그릴 수 있는 툴이구나, 하는 정도?
하지만 쓰면 쓸 수록, CAD(Computer-Aided Design)라는 이 녀석은 내 성격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여튼 깊고 깊게 파고 들어왔고 나 또한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받아 들였다.
당장 프로그램을 실행하면 화면은 평면상로만 펼쳐진 무언가로만 보이지만, 그 위의 객체들은 화면 곳곳에서 온갖 정보를 참았다가 토내해듯 말해주고 있다.
하나의 직선은 단순한 선이 아니다. 레이어에 의해 구분되고, 색상에 의해 구분되고, Z값에 의해 '나 공중에 떠있어~'라고 말해준다.
스냅 종류가 많은데 그래서 오히려 가끔은 선과 선들의 만남이 보이는 것 만큼이나 정교하게 떨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. 그럴 때 '(나포함)강박인들'은 단위를 소수점 아래 8자리로 바꿔 설정하고는 조용히 쾌감을 느낀다. '이제 완벽히 컨트롤 할 수 있어!'라고 속으로 외치며.
수많은 기능을 품고 있는 욕심쟁이 프로그램이라 그 자체로도 오류가 있겠지만, 다루는 사람에 의해서도 파일의 퀄리티가 천차만별로 갈린다. 이 점은 때론 골치아픈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, 그 정도는 눈감아 줄 수 있다.
혹자는 3대 미스테리한 프로그램 중 하나로 일컫는다는 캐드.
과장해서 다른 건 다 제쳐두고 말하자면, 건축학과를 들어가길 잘했다는 이유 중의 하나가 캐드를 배우게 되었다는 점 아닐까.
못그리는 거 빼고 다 그릴 수 있는, 애증의 캐드.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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